
23년 12월에 확정된 2028학년도 대학입시의 핵심은 입시 역사에서 처음 도입되는 공통 수능이다. 고교 교육과정에서는 명목상 문과·이과 구분이 사라졌으나, 수학과 과학 선택과목에 따른 구분이 존재했고 이 구분이 수능 선택과목 체제로 연결되면서 문과·이과 구분은 사실상 그대로 유지되었다. 그런데 공통 수능에서는 선택과목이 사라지면서 문과·이과 구분도 사라진다. 공통 수능은 대학입시에 어떤 영향을 주게 될까?
문이과 통합 정시 배치표 : 경영대와 공대, 어디가 더 위에 있을까
정시모집에서 모든 대학과 학과가 하나의 배치표에서 하나의 줄로 배치된다. 새로운 현실이다. 과거에는 인문계와 자연계가 별도의 배치표에서 경쟁했지만, 2028학년도부터는 의대부터 공대·인문계 학과까지 하나의 줄에서 우열을 다투게 된다. 배치표 최상단에는 의대가 있을 것이다. 전국 의대의 점수 분포 사이 어딘가 공대 반도체 관련 학과가 있고, 그 아래로 치약한수의학 계열과 공대 다른 학과들이 포진하게 된다.
이런 분포는 개별 대학들 사이에서 서로 엉키며 배치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든다. 한 대학이 끝나고 다른 대학이 시작하는 단선적 서열 구조가 아니다. 이 배치표에서 서울대 경영대는 어디쯤 위치할까. 의대 끝 선? 서울대 공대 여러 학과 중 어딘가? 배치표의 우열은 유무형의 잠재적 이익을 판단하는 사회적 인식과 가치관에 달려 있다. A대학 공대와 B대학 인문대가, C대학 자연대와 D대학 사회대가 배치표에서 우위를 다투는 초유의 상황이 펼쳐졌을 때 우리 사회는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판단하게 될까. 인문+자연계열 전체 학과를 두고 잠재적 이익의 서열을 예측하기란 매우 어렵다. 그래서 내년 정시 원서접수가 시작되면 혼란과 불안은 최고조가 되고, 내후년이 되어도 혼란과 불안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렇지만 이런 혼란은 새로운 질서가 만들어지는 출발점이 되기도 한다.
상위권 대학의 내신 수학·과학 심화 과목 선호
예를 들어 수능에서 백분위 96%를 받은 A·B학생이 있다고 하자. A학생은 인문계 방식으로, B학생은 자연계 방식으로 수학·과학 과목을 이수했다. 두 학생이 산업공학과에 지원한다면 상위권 대학은 수능뿐 아니라 학생부의 교과 이수 역량도 고려하기 때문에 B학생이 상대적으로 유리할 가능성이 높다. 경영대처럼 인문계 모집단위에서도 같은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 이처럼 수시모집 학생부종합전형에서 교과 이수 상황이 중요하듯, 공통 수능 체제에서도 내신에서 수학과 과학을 많이 이수하면 입시에서 유리한 위치에 선다. 수학에서 미적분Ⅱ와 기하를 이수하면 더 많은 선택 기회를 얻을 수 있다. 그래서 학군지 고등학교에서 이과 비율이 70%가 넘는 데 비해 어떤 일반고에서는 이과 학생은 30% 내외에 머물기도 한다. 교육 격차는 수학과 과학 이수 상황으로도 나타난다. 다만 이런 상황은 상위권 소수 대학에만 적용되며 일반적인 기준은 아니다. 학생 수가 줄어들고 있어서 입학생을 충원해야 하는 많은 대학에서는 그런 선발 기준까지 적용할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몇 년 전부터 이과생의 ‘문과 침공’과 문과생의 ‘사탐런’이 문·이과 경계를 흔들었다. 상위권 대학은 수학·과학 역량이 높은 학생을 선호하는 반면, 학생 충원이 중요한 대학은 문과생에게 이과 모집단위의 문호를 열었다. 우리 사회는 취업 기회가 이과 학생에게 더 많이 열려있다고 생각하고, 그래서 상위권 대학은 수학·과학을 많이 배운 학생을 선호한다. 반면 교실에서 수학과 과학을 정말로 충실히 공부한 학생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올해 수능 탐구영역 응시자 중 사탐 2과목은 69.6%, 과탐 2과목은 14.2%, 사탐1+과탐1은 16.1%이다. 수학에서도 확률과 통계 선택자는 64.9%, 미적분 선택자는 32.4%, 기하 선택자는 2.7%이다. 수학 미선택자는 6.0%이다. 즉, 어려운 수학·과학 과목을 선택하는 학생 자체가 소수인 상황에서 이들 과목의 이수가 상위권 대학 진학의 새로운 변별 기준이 될 수 있다. 2028 공통 수능을 두고 많은 입시 전문가들은 변별력에 초점을 두지만, 내신 수학과 과학 선택과목 조합이 ‘문과 침공’과 ‘사탐런’을 대체하는 새로운 기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문과를 보호하던 칸막이가 사라지면서 상위권 대학을 중심으로 이과 우위 시대가 본격화된다. 따라서 학생들은 수시와 정시 모두에서 교과를 이과처럼 선택해야 유리해진다. 자연 계열뿐 아니라 거의 모든 모집 단위에서 그렇게 된다. 이것이 새로운 공통 수능이 가져올 분명한 경향이다. 이제 앞으로 우리 사회에서 수학과 과학 실력은 하나의 계급을 형성하게 된다.
김경범 국가교육위원회 대입특위 위원, 전 서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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