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봄부터 집 앞 공원에서 ‘짹짹’거리며 늘 반갑게 맞이하던 참새들이 찬 바람이 불자 어느 순간 모두 사라졌습니다. '아하~!' 들녘의 곡식들이 익어가는 추수의 계절이 다가왔음을 직감합니다. 해마다 겪는 풍경이지만 바쁜 일상 속에서 또 잊고 있었습니다. 참새들이 황금 들녘으로 떠나는 계절입니다. 이 시기가 되면 부지런한 농부들은 축 늘어진 수수 이삭에 망을 씌우거나 참새들이 먹어치우기 전에 서둘러 수확을 진행합니다. 가짜 총소리를 울리거나 허수아비를 세워보기도 하지만, 참새들은 한두 번 속을 뿐 제법 영리해서 금세 적응해 버립니다.
참새의 생태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흥미로운 반전 매력이 가득합니다. 참새는 계절에 따라 주거 형태와 라이프스타일을 완벽하게 바꾸는 '지혜로운 전략가'입니다. 봄과 여름, 번식기가 되면 참새는 인간의 주거지 주변으로 모여듭니다. 인가의 지붕 틈새나 담장 구멍, 텃밭 근처에 둥지를 틀지요. 맹금류나 뱀 같은 무서운 천적들이 감히 인간의 온기가 남은 민가 근처까지 쉽게 접근하지 못한다는 점을 이용한 천재적인 배산임수 생존 전략입니다.
가족 단위로 활동하던 참새들이 가을이 되면 무리를 형성해 들녘에서 먹이를 찾고 있다.
하지만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가을이 오면 참새들의 생활 양식은 완전히 달라집니다. 정들었던 민가를 떠나 황금빛으로 물든 넓은 들녘으로 이동해 거대한 무리를 이룹니다. 이 시기 참새들이 집단생활을 하는 데는 명확한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는 '생존을 위한 방어망' 구축입니다. 탁 트인 들녘은 천적의 공격에 노출되기 쉽습니다. 이때 수십, 수백 마리가 무리를 지어 다니면 누군가 천적을 가장 먼저 발견해 경고음을 울릴 수 있고, 맹금류의 시선을 분산시켜 특정 개체가 표적이 되는 것을 막을 수 있습니다.
둘째는 '미래를 위한 로맨스'입니다. 여름 내내 각자의 동네에서 부화해 자란 젊은 참새들이 가을 들녘이라는 거대한 미팅 장소에서 만납니다. 서로 다른 유전자를 가진 개체들이 섞이면서 유전적 다양성을 확보하고, 이듬해 봄에 새로운 가정을 꾸릴 건강한 배우자를 만나는 소중한 기회가 됩니다.
참새는 인간과의 관계에서도 독특한 '이중성'을 가집니다. 번식기에는 나방 애벌레나 벼룩잎벌레 등 농작물을 해치는 해충을 엄청나게 잡아먹어 텃밭의 고마운 '익조(益鳥)' 역할을 톡톡히 해냅니다. 하지만 벼가 익어가는 가을이 되면 고소한 낟알을 훔쳐 먹는 불청객으로 변신해 농민들의 애를 태우기도 하지요.
이러한 참새의 이중성을 간과했다가 사상 최대의 비극을 맞이한 역사적 사건도 있습니다. 1950년대 말, 중국의 마오쩌둥은 농작물을 먹어 치우는 참새를 가리켜 "저 새는 해로운 새다"라고 지목하며 전 국토적인 참새 박멸 운동을 벌였습니다. 그 결과 수억 마리의 참새가 소탕되었지요.
하지만 결과는 참혹했습니다. 참새가 사라지자 천적이 없어진 메뚜기와 해충들이 창궐해 온 나라의 농작물을 초토화했습니다. 결국 대기근이 찾아왔고, 마오쩌둥은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며 소련에서 참새를 다시 수입해 오는 웃지 못할 해프닝을 벌여야 했습니다. 참새 한 마리가 생태계 균형을 유지하는 데 얼마나 중요한 고리인지를 증명한 결정적 사건이었습니다.
참새라는 이름에서 '참'은 '진짜' 또는 '참되다'라는 뜻을 품고 있습니다. 예부터 시인과 문객들의 문인회나 시회에서 단골 소재로 사랑받아온 참새는, 수많은 조류 가운데서도 우리 민족의 삶과 가장 가까이서 숨 쉬어온 '진정한 새'라는 훈장 같은 이름을 가졌지요. 먹을 것이 귀하던 시절, 시골 장터나 포장마차의 단골 메뉴였던 참새구이 탓에 무차별 사냥을 당하며 한때 그 수가 급격히 줄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특유의 놀라운 적응력으로 시련을 이겨내고, 오늘날 다시 우리 곁의 공원과 들녘을 생기 있게 채워주고 있습니다.
참새 무리가 경남 창녕의 한 정미소 나무에 앉아 낙곡을 기다리고 있다.
결실의 가을이 지나고 추운 겨울이 오면 참새도 견디기 힘든 고행의 시간이 찾아옵니다. 들녘의 먹이가 바닥나면 참새 떼가 모여드는 비밀 기지가 있습니다. 바로 방앗간이나 정미소 부근입니다. 곡식을 싣고 오가는 차량에서 떨어지는 낙곡이 꽤 많기 때문이죠. 찬 바람 속에서도 정미소 마당에 내려앉아 바쁘게 낟알을 쪼아 먹는 참새들의 모습은 겨울철 시골 풍경의 정겨운 한 장면이기도 합니다.
흔히 볼 수 있다고 해서 가치가 가벼운 것은 아닙니다. 찰나의 순간에도 천적을 피하려 부지런히 고개를 젓고, 가을 들녘에서 내일을 함께할 짝을 찾으며, 겨울철 낙곡 하나에 감사하며 자연의 톱니바퀴를 돌리는 참새의 날갯짓은 그 자체로 경이롭습니다.
글·사진=김연수 생태칼럼니스트 wildik02@naver.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강영관 산업2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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