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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현의 자유와 역사적 책임,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가

예술은 왜 금기를 건드릴까. 사람들이 불편해하기 때문이다. 모두가 믿는 이야기에 질문을 던지고, 말하기 어려운 것을 꺼내는 것도 예술의 역할이다. 그러나 표현의 자유가 사실을 마음대로 바꿀 권리까지 뜻하지는 않는다. 불편한 질문은 허용하되, 의혹을 사실처럼 만들지는 않는 것. 역사적 사건을 다루는 예술이 지켜야 할 선이다.

허진호 감독의 <암살자(들)>을 둘러싼 논란도 이 기준에서 봐야 한다. 나는 영화가 역사적 사건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 자체를 막아서는 안 된다고 본다. 다만 실제 인물과 사건을 소재로 삼았다면 어디까지가 확인된 사실이고 어디부터가 창작과 해석인지 살펴볼 책임도 있다.

금기를 건드린 예술은 살아남았다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의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이 대표적이다. 1988년 개봉한 이 영화는 예수를 두려움과 욕망을 가진 인간으로 묘사했다. 특히 십자가에서 내려와 막달라 마리아와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장면은 기독교계의 거센 반발을 불렀다. 미국에서는 개봉을 앞두고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고 일부 극장은 상영을 중단했다.

하지만 영화는 사라지지 않았다. 논란의 중심도 상영 여부에서 예수의 신성과 인간성을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비평의 문제로 옮겨갔다.

테런스 맥낼리의 연극 <코퍼스 크리스티>도 예수와 제자들을 현대 미국의 게이 남성으로 재해석해 거센 반발을 받았다. 공연 취소와 폭파 협박까지 있었지만 작품은 다시 무대에 올랐다.

살만 루슈디의 소설 <악마의 시>는 훨씬 심각했다. 이슬람에 대한 내용 때문에 1989년 이란의 호메이니가 루슈디의 처형을 촉구하는 파트와를 내렸다. 작가는 오랜 기간 신변 위협에 시달렸고 2022년 실제 피습까지 당했다.

이 사례들이 보여주는 것은 분명하다. 불쾌하다는 이유만으로 예술을 없애서는 안 된다. 작품을 비판할 자유와 작품을 금지할 권리는 같은 것이 아니다.

<암살자(들)>은 무엇을 건드렸나

<암살자(들)>이 뜨거운 논란에 휩싸인 이유는 종교가 아니라 한국 현대사의 민감한 기억을 건드렸기 때문이다.

영화는 1974년 8월 15일 육영수 여사 피격 사건을 소재로 한다. 당시 한국 수사기관은 문세광이 북한과 조총련의 지령을 받아 범행했다고 결론 내렸다. 그러나 사건 직후 일본과 미국 측에서는 북한이나 조총련의 직접적인 개입을 확인할 결정적 증거가 부족하다는 판단도 나왔다.

따라서 이 사건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 자체를 허위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의문을 제기하는 것과 특정한 의혹을 사실처럼 받아들이게 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영화는 공식 기록과 남아 있는 의문 사이를 파고든다. 경찰과 기자라는 허구의 인물을 통해 당시 수사와 언론 통제, 정보기관의 움직임을 추적한다. 이를 역사적 사건을 다시 질문할 수 있는 창작의 자유로 보는 시각이 있는 반면, 확인되지 않은 배후설을 영화적 장치를 통해 사실처럼 암시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논란의 핵심은 여기에 있다.

영화는 역사책이 아니다. 그렇다고 역사적 인물을 소재로 삼았다는 이유만으로 사실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로운 것도 아니다. 특히 박정희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는 지금도 한국 사회에서 평가가 크게 엇갈리는 인물이다. 실제 사망 사건과 유족의 명예까지 얽혀 있는 만큼 논란이 클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상영을 막는 것이 답은 아니다. 영화의 역사 해석이 잘못됐다고 생각한다면 자료를 제시해 반박하면 된다. 관객도 영화적 장면과 확인된 역사적 사실을 구분해 볼 필요가 있다.

오히려 이번 논란을 계기로 당시 수사기록과 외교문서, 언론 보도를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영화가 던진 질문이 틀렸다면 자료로 바로잡으면 된다. 기존 기록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면 그것 역시 공개적으로 논의할 수 있다.

상영을 막는 것보다 검증을 통해 영화의 주장과 역사적 사실을 가려내는 편이 낫다.

표현의 자유를 지키는 방법은 불편한 작품을 없애는 것이 아니다. 그 작품에 반박할 자유를 함께 보장하는 것이다.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과 <악마의 시>도 논란 속에서 살아남았다. 작품에 대한 비판 역시 사라지지 않았다. <암살자(들)>도 마찬가지여야 한다.

영화는 질문할 수 있다. 관객은 그 질문을 받아들일 수도, 거부할 수도 있다. 역사학자는 자료로 반박할 수 있고, 유족은 명예를 지키기 위해 법적 대응을 할 수도 있다.

결국 필요한 것은 검열이 아니라 검증이다. <암살자(들)>이 던진 질문을 막는 것보다 그 질문에 역사적 자료로 답하는 것이 우리 사회가 선택할 길이다. 예술이 금기의 문을 열 수 있다면, 그 문 너머에 무엇이 사실인지를 따지는 일은 관객과 사회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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